22, 자국의 문화재가 없는 <대영박물관>은 속빈 강정

                                              출처 / 구글 / 대영박물관 

4월13일 오후 2시15분, 인천국제 공항을 출발한 아시아나 여객기가 런던 하드로 공항에 도착하니까 그곳 시간은 오후 7시55분이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12시간을 비행했으면서도 시간상으로는 5시간 4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는 계산이 나왔습니다.

입국심사와 세관검사를 마치고 나오니까 여행사 피켓을 들고 있던 현지 가이드가 우리 일행(21명)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호텔로 안내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호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관광버스로 템스 강에 정박 중인 군함, 벨파스트 호 앞에서 하차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 싸웠으며, 한국전쟁(6.25)에도 참전했다는 영국 군함이라고 가이드가 말했습니다.

지금은 해양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면서 다시 말했습니다.

“템스 강변을 거닐면서 사진도 찍으시고 구경하시다가 1시간 후, 군함이 있는 이곳에서 다시 만나는 걸로 하겠습니다. 멀리 가지 마세요. 다음 코스는 하이드 파크와 영국 박물관. 버킹검 궁전의 근위병 교대식을 보고, 하드로 공항에 가서, 오후8시 비행기로 로마로 가시는 걸로 일정이 잡혀 있습니다.”

가이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리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템스 강변을 걸으면서 유럽여행을 참잘 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강 건너의 ‘국회의사당’, 커다란 시계탑이 보이는 ‘빅벤’, 고대 로마인들이 최초로 건설했다는 ‘런던 브리지’, 커다란 원형 회전 캡슐이 135m 높이까지 올라간다는 ‘런던 아이’, 영국 역대 왕의 대관식 행사로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 런던의 랜드 마크로 알려진 ‘타워 브리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다시 버스를 타고 ‘하이드 파크’로 이동했습니다.

총면적이 140만㎡라서, 하루에 다 둘러 볼 수 없다고 가이드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공원 중앙에 있는 ‘서펜틴 호수’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왔습니다.

런던 도심 한가운데에 이처럼 넓은 잔디밭과 푸른 숲, 맑은 호수가 어우러진 휴식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부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사방을 둘러봐도, 걸터앉을 의자와 운동기구 같은 시설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풀밭에 앉거나 누워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주차장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영국 박물관>으로 이동하는 동안 가이드가 차내 방송을 통해서 말했습니다.

“영국 박물관은 1753년 박물학자인 한스 슬론 경이 6만5천 점의 수집품과 4만5천 권의 장서를 정부에 기증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몬태규 후작이 건축가 피에르 퓌에에게 설계를 의뢰하고, 베르사유 궁전에 참여했던 화가들이 실내 장식을 맡아서 완공했습니다. 1759년부터 일반에게 공개했는데, 유물이 손상될까봐 엄격한 심사를 거쳤기 때문에 하루에 고작 십여 명밖에 관람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의 조각상, 세계 각지를 정복할 때마다 전리품으로 빼앗은 유물을 전시하면서 명실상부한 세계적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정 때(1801) 프랑스인들에게서 빼앗은, 비밀과 열쇠가 함께 새겨진 <로제타석>도 있습니다.”

가이드는 <로제타석> 단어를 강조하는 어투로 말했습니다.

1799년 프랑스 군대가 이집트 원정 중에, 어느 병사가 나일 강 삼각주에 위치한 ‘로제타’라는 마을에서 비석을 하나 발견했다는 기사를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이드가 특히 강조했다는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길이1.25m 너비0.7m 두께0.25m의 비석에는, 암호처럼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볼 때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다가 프랑스군과 영국군은 이집트 유물을 서로 차지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영국군과 터키군의 포위 공격이 시작되자, 프랑스군은 <로제타석>을 카이로에서 알렉산드리아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전투에서 패배한 프랑스군은 알렉산드리아의 항복협정문에 따라, 이집트에서 수집한 골동품들을 영국군에게 양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프랑스군의 지휘관은 <로제타석>만큼은 빼앗기지 않으려고 자신의 집에 별도로 보관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영국군이 빼앗으면서 <로제타석>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서 전시하지 못하고, 런던의 영국 박물관에서 전시하게 되었습니다.

프랑스군은 보물을 빼앗기기 전에, 여러 개의 모조품과 탁본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모조품 중에 하나가 대한민국 중앙도서관에도 있습니다.

그동안 탁본을 가지고 꾀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거듭한 끝에 <로제타석>은 세 개의 텍스트가 동일한 내용을 각기 다른 언어로 쓰였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기록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새로운 왕이시며 왕관의 주인이신, 영광이 크시고 이집트를 평탄케 하시며 신들에 대해 경건하며 적들보다 우월하며 인간의 삶을 올곧게 하시고, 헤페스투스 대왕처럼 30년을 다스리시고, 태양과 같은 왕이시며, 위의 세상과 아래 세상의 위대한 왕이며, 헤패스투스가 인정하신 부모를 공경하는 신들의 자녀이며, 태양이 승리를 허락하시고, 제우스의 현신이며, 태양의 아들이신, 프타에게 사랑받는 영생하실 프톨레마이오스께서 통치하실 적에 ….”

그러니까 상단의 텍스트 문단(14줄)은 사제들을 위하여 이집트 신성문자로 적은 것이고, 중간의 문단(32줄)은 신하들을 위하여 이집트 민중문자로 적었습니다.

하단의 문단(51줄)은 이집트에 사는 그리스어 문화권 사람들을 위해 고대 그리스어 대문자를 새긴 비석이었습니다.

가이드를 따라 박물관 입구에 오니까, 입장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습니다.

단체 관광의 경우, 박물관 직원이 길 안내를 해주었습니다.

지하 1층과 지상 2층으로 되어 있는 전시실은 이집트, 그리스와 로마, 서아시아, 동양 전시실로 각각 구분이 되어 있었습니다.

휴대용 단말기 이어폰으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동했습니다.

이집트와 수단의 거의 모든 시대를 커버할 수 있는 유물이 이곳에 있고, 고대 로마의 유물도 10만 점이 넘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소형상, 페리클레스의 반신상,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로마 황제들의 흉상도 보면서 지나쳤습니다.

안내원이 우리를 한국관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이미 보았기 때문에 별다른 감흥은 느낄 수 없었습니다.

1992년, 대영박물관에 한국관을 별도로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 200만 달러를 한국이 부담한다는 약정서를 체결했다고 합니다.

2000년 11월에 오픈한 한국관에는 구석기 유물부터 조선 후기의 미술품까지 250여 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여기에 전시하는 유물은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이 문화재를 대여하는 식으로 교체하고 있다는 기사도 읽었습니다.

2008년 12월부터는 한국어 음성·동영상 안내 서비스가 실시되고 있으며, 이곳 이외에도 스코틀랜드국립박물관에는 한국 도자기와 칠기 및 목가구 등을 전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민간 차원에서도 대한민국이 유구한 역사를 가진 문화민족임을 알리는 사업을 개별적으로 했다는 기사도 읽었습니다.

현대 그룹에서, 환화 약4억 원을 지원해서, 피즈윌리엄 박물관에 1990년 4월 한국관을 개설했으며, 삼성 그룹에서도 한화 약6억 원을 들여서 빅토리아앤앨버트 박물관에 132㎡의 한국관이 1992년 12월에 문을 열었다는 기사도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수많은 유럽의 다른 박물관들의 전시 품목은 강대국들이 침범해서 전리품으로 빼앗아 간 것이고, 영국의 대영박물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도적질해 간 문화유산을 자신들 것인 양 전시하고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런던의 대영박물관 경우, 자국의 문화재가 한 개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속빈 강정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처럼 속빈 강정에, 대한민국 정부와 민간단체가 독립관을 만들고, 대한민국이 유구한 역사를 지닌 문화민족임을 알리는데 힘을 쏟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자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영박물관 한국관에 와서 보니까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전시 품목 중, 어디에도 <홍익인간>을 알리는 어떤 문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은 <홍익인간>입니다.

<홍익인간>을 유럽에 알린 사람은 『25시』소설로 유명한 게오르규입니다.

"한국은 지극히 평화적이고 근면한 국가입니다. 홍익인간이라는 단군의 통치이념은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완벽한 법률입니다. 21세기 세계를 이끌어갈 철학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극찬했습니다.

나도 게오르규 못지않게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고 있거니와 <홍익인간>을 생활신조로 삼고 살아왔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독교 신학에 한동안 관심을 가졌다가 환멸을 느꼈습니다.

기독교가 자랑하는 성경 중에서도 특히, 신약성경은 <로제타석>와 하나도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천국의 비밀’, ‘천국의 열쇠’라는 단어가 들어있습니다. 그것 때문만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마태복음에 있는 산상수훈은 나사렛 예수의 선교활동 초기에, 갈릴리의 어느 능선에서 군중에게 한 설교로 알려져 있습니다.

산상수훈은 그동안 많이 인용되고, 많이 분석되고, 많이 논쟁의 대상이 되고, 영향력이 큰 윤리적 종교적 논쟁거리였습니다.

산상수훈에는 천국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천국은 마태복음에만 들어 있는 고유 명칭입니다. 누가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에는 하느님 나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에 보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이렇게 침례요한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사용할 때는 공허한 외침이었습니다.

침례요한을 만나고 갈릴리로 돌아온 예수가 자신의 메시지를 천국에 숨겨 놓기 시작하면서, 천국은 사람들의 상상력과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단어로 바뀌었습니다.

예수가 말한 천국에서, 나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던 예수!

자연과 생명을 연구한 예수!

사람의 몸은 스스로 병을 낫게 하는 능력이 있다고 말한 예수!

태생적 창조 정신을 믿고 자유자재로 쓰자고 말한 불세출의 예수!

사람에게서 무한한 가능성을 본 예수!

인류의 미래는 희망적이라고 말한 예수의 이미지가 떠오르곤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유익한 이야기를 나사렛 예수는 왜, 천국에 숨겨놓아야 했을까요?

서기30년을 전후해서 유대는 말할 수 없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부활한 그리스도’ 미신이 창궐했으며, 은밀한 미스터리와 허망지설이 유행했으며, 종파분자들의 자중지란으로 유대는 서기70년 파국을 향해서 급물살을 타고 있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태생적 창조 정신과 자력갱생의 정신력으로 사람은 누구든지 거듭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시기상조임을 미리 알고, 예수는 비유로만 가르쳤습니다.

지혜와 슬기를 강조하면서 술 취하지 말라, 거짓선생을 조심하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비단 나 혼자만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산상수훈에 대해서 새로운 평가를 내린 사람은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1804)는 윤리적 절대 명령의 결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에른스트 르낭(1823~1892)은 목가적 환상이라고 말했지만, 톨스토이(1828~1910)는 문자 그대로 따라야 할 그리스도의 법이라고 했습니다.

마하트마 간디(1869~1948)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를 좋아하지만 크리스천은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를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디는 산상수훈을 비폭력주의(사타그라하)를 위한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했습니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1694~1778)는, 예수와 산상수훈에 대하여 열광적인 찬사를 보냈으며, 예수의 이름을 빙자해서 벌어지는 갖가지 불법에 대해서는 개탄해 마지않았습니다.

볼테르는 무신론자보다 광신이 훨씬 더 해롭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나사렛 예수는 중세 유렵의 르네상스 원조였습니다.

이신론과 계몽주의 사상가보다 훨씬 앞선, 인류의 위대한 스승이었고, 여명기를 이끈 선각자였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