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17의 게시물 표시

26, 마가복음13장은 국란과 거짓예언을 얼버무린 헛소리

이미지
                                          출처 / 구글 / 네로 황제  ◆ (마가복음13장 3~26절) ‘예수께서 감람산에서 성전을 마주 대하여 앉으셨을 때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에게 말하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로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보라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백성을 미혹케 하려 하리라.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 때에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 『유대 전쟁사』는 요세푸스가 로마에 있으면서 서기75년부터 쓰기 시작하여, 42세가 되던 해(AD79)에 완성했다. 『유대 고대사』는 56세에 완성했다. 『유대 고대사』는 유대주의를 로마인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라틴어로 썼다. 『유대 전쟁사』는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서, 로마인들이 모르는 팔레스타인 지방의 사투리 아람어로 썼다. 그런데 서기65부터 연이어 나오기 시작한 마가, 마태, 누가, 요한복음은 그리스어로 썼고, ‘로마군이 마을들을 방화하고, 들판에 있는 가축들을 잡아가고, 전쟁 능력이 있는 유대인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고, 약한 자들을 잡아갔다’는 내용이 없다. 애초부터 그런 일은 없었다.

25, 서기70년 유대 멸망을 초래한 <요세푸스 중후군>

이미지
                                                          출처 / 네이버 / 예루살렘 멸망   ◆ ‘로마군은 요세푸스의 공격에 화가 치밀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온갖 만행을 자행하였다. 그들은 평지의 마을들을 방화하고 들판에 있는 가축들을 잡아가는가 하면, 전쟁 능력이 있는 유대인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고 약한 자들을 잡아갔다. 이에 전 갈릴리 지역은 온통 피바다와 불바다가 되고 말았다. 갈릴리에서는 저질러지지 않은 불행과 비극이 없을 정도로 온갖 불행과 비극이 만연했다. 그리하여 갈릴리 인들의 피신처라고는 요세푸스가 성벽을 쌓아 요새화한 도시들밖에 없었다.’ (유대 전쟁사 제3권 중에서)   ● 서기66~70년에 벌어진 유대 반군과 로마군 전쟁을 기사화한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사』는 조국의 패망과정을 패배자의 관점에서 썼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설이다. ‘순탄치 못한 역사 속에서 패배자의 기록은 소실되기 마련인데 현존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면서 기독교계에서는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나 『유대 전쟁사』는 패자의 기록이 아니었다. 자중지란으로 유대를 파국으로 몰고 갔던 종파분자들의 만행이었고, 미신과 우상숭배자들의 싸움질이었고, 병적인 <자기기만 증후군>이었다. <자기기만 증후군>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이 모르고 있거나,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철석같이 믿을 때 나타난다. 위증한 환자의 경우, 말과 행동이 너무나도 능청스러워서 거짓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요세푸스는 <자기기만 증후군>의 대표 격이었다. 제작 연도가 불분명하고,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복음서 저자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도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반복했기 때문에 요세푸스와 동급인 반사회적 인격 장애인들이었다. 항간에 나돌고 있던 ‘부활한 그리스도’ 미신을 가지고, 기독교를 창시한 바울도 마찬가지였다.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은 인간이 지식

24, 예수를 다중인격자로 만든 주범들

이미지
                                                                   출처 / 구글 / 헤롯 성전   ◆ (마태복음23장 13~27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 ‘역사적 예수’ 탐구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있다. 역사적 예수 탐구의 아버지는 헤르만 자무엘 라이마루스(1694~1768)이다. 라이마루스는 예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성서를 논리적으로 비판하면서 계시와 기적을 부정했다. ‘그리스도 부활’은 사도들의 날조였다는 논문도 썼다. 하지만 박해가 두려워서 발표하지 않았다. 그가 죽고, 독일 계몽주의 사상가 레싱( 1729~1781)이, 라이마루스 의 원고를 발견하고 『한 무명인의 단편』이라는 제명으로 발표했다. 이것 때문에 레싱은 교회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미국의 건국 아버지였던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1743~1826)도 ‘역사적 예수’ 탐구에 동참했다. 1804년 대통령 임기 중, ‘믿을 만한’ 내용만 추려서 『제퍼슨 성경』을 완성했다. 나사렛 예수의 삶과 도덕에 대해서 특별히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에,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희랍어성경’, ‘라틴어성경’, ‘프랑스어성경’, ‘영어성경’에서 발췌한 것들을 스크랩 하고, 사이사이에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거나 오탈자와 문법을 교정했다. 계몽주의 사상가였던 제퍼슨은 예언이나 기적, 예수부

23, 헤롯왕과 예수의 연대기적 이해

이미지
                                                         출처 / 구글 / 열두 살 예수   ◆ (누가복음2장 40~52절)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아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이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 헤롯왕은 기원전4년에 죽었다. 예수는 서기1년에 태어났다. 누가복음에 있는 헤롯왕과 예수 탄생 관련 기사는 시기적으로 맞지 않거니와 유아 살해는 정치적 의도가 깔린 조작 기사였음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어렵사리 찾아낸 연대기적 자료를 보면, 헤롯왕과 예수는 현실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냉철한 이성의 소유자였다. 바리새인들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한 공통점도 있었다. 헤롯은 자수성가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자비를 들여 성전 산을 축조하고, 그 위에 성전을 새로 지었다. 민심을 얻기 위하여 부단히 노력한 현명한 통치자였다. 현명한 통치자에게 협조는 못할망정 되레,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성전 무용론을 주장하면서 헤롯을 괴롭혔다.

22, 헤롯의 유아살해는 새빨간 거짓말

이미지
                                                             출처 / 구글 / 헤롯왕의 유아 살해   ◆ (마태복음2장 11~23) (동방박사)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 가니라.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급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급으로 떠나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급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 본 그 때를 표준 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바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함이 이루어졌느니라.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급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하시니,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 오니라. 그러나 아겔라오 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라.   ● 서기1096~1270년까지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하여 십자군 원정을 8차례나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교황권의 쇠퇴와 기사 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