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침례요한과 안티바 그리고 예수


                                    출처 - 구글 신약시대지도 검색


(누가복음3장 1~22절)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 요한이 침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까?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세리들도 침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까? 하매, 가로되 정한 세외에는 늑징치 말라 하고,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들메끈을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주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또 기타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분봉왕 헤롯은 그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그의 행한 모든 악한 일을 인하여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이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백성이 다 침례를 받을 새 예수도 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시온산 중턱에는 하스몬 궁전이 있었다. 그런데도 헤롯은 시온 산 정상에 또 다른 궁궐을 세웠다. 예루살렘에 회당이 없었던 바리새인들은 시온 산 정상에서 모임을 갖곤 했었다.
이천여 명에 가까운 바리새인들이 모임을 가지면서 산 정상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 모습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 헤롯은 그곳에 궁궐을 짓고, 한 동을 바리새인들에게 주었다. 가까이에서 바리새인들을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헤롯이 노환으로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으니까, 노골적으로 헤롯을 괴롭혔다.
바리새인들과 더 이상 함께 지낼 수 없게 된 헤롯은 여리고성 별장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외지에 나가 있던 장성한 두 아들을 불렀다.
헤롯에게는 장성한 세 아들이 있었다. 차남은 몇 년 전에 죽었고, 당시 36세였던 장남은 가이샤라 북쪽 칼기스 지역에 있었다. 삼남(32세)은 시리아 주둔 로마군에 복무 중이었다. 그들이 여리고성으로 오다가 괴한들의 공격으로 죽었다.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헤롯은 기원전4년 76세로 죽었다. 
헤롯이 사망하니까 터무니없는 소문이 나돌았다.
“의심이 많은 헤롯이 두 아들을 죽이고, 자신도 천벌을 받아 죽었다.”
보나마나 바리새인들이 유포시킨 거짓말이었다.
헤롯의 사망 사실을 알게 된 시리아 총독 퀴리니우스(구레뇨)가 달려와서 장례를 치르고, 영토를 헤롯의 어린 자녀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아겔라오(19세)에게는 예루살렘과 이두메 그리고 사마리아 지역을, 안티바(16세)에게는 베레아와 갈릴리 지역을, 빌립에게는 드라고닛 주변과 갈릴리 호수 북동쪽 지역을 주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유산 상속이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분봉 왕 같은 특권을 주지 않았다.
이때, 유산 상속을 받지 못한 헤롯의 다섯 번째 며느리(베레니케)가 헤로디아(11세)과 여섯 살 난 아들(아그립바)을 데리고 로마로 갔다. 아들이 장성하면 유대 왕이 되게 하려는 속셈을 그녀는 숨기지 않았다.
(바이블해커1권 10장, 헤롯의 유아살해는 음해성 루머 중에서)

퀴리니우스는 헤롯의 자녀들에게 토지를 나눠주었을 뿐 어느 누구에게도 왕 칭호를 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아겔라오가 29세가 되던 해(AD6)에 정식으로 유대 왕이 되게 하려고 로마로 보냈다. 헤롯왕에 이어 유대를 선린왕국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러자 사마리아 여인 말타케 소생 아겔라오가 유대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유대인들이 대표단을 먼저 보내 아겔라오를 모함했다.

“아겔라오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포악한 자입니다. 다윗 왕 후손을 자처하면서 말썽을 피우던 갈릴리 유다란 자가 있었습니다. 그 자는 헤롯에게 죽임을 당한(BC38) 에제키아의 아들이거니와 아비와 마찬가지로 갈릴리에서 다윗 왕 후손을 자처하면서 왕 행세를 하다가 사령관 바루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아겔라오는 유다의 자식들을 모조리 없애버릴 요량으로,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두 살 이하의 아이들을 모두 죽이라고 무뢰배들을 보냈습니다. 그 바람에 아이를 빼앗긴 여인들이 머리와 가슴을 풀어헤치고 거리를 뛰어다니면서 대성통곡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겔라오는 황제께서 그와 같은 지시를 내린 것처럼 둘러댔습니다. 이는 로마와 유대의 선린 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저희들이 바라는 바도 아닙니다. 이처럼 만행을 저지른 자가 지금 로마에 와 있습니다. 그 자에게 유아살해의 책임을 물어 중벌을 내려 주십시오. 아울러 이 탄원서는 확실하고 참된 것이기에, 각계각층의 대표들이 합심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때마침 게르마니아 원정을 준비 중이었던 사령관 바루스가 아겔라오와 수도 로마에 있던 유대 젊은이들도 함께 데리고 갔다. 
그 바람에 헤로디아의 전 남편을 비롯하여 클라우디우스와 절친한 친구였던 헤롯 아그립바도 군복무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되니까 아들을 유대 왕이 되게 하려고 마음먹었던 베레니케는 상심한 나머지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바이블해커2권 5장, 반역을 선동한 아그리피나 중에서)

서기6년, 로마에 갔던 아겔라오가 모함을 당해 돌아오지 못하니까 퀴리니우스는 대제사장 예복을 빼앗아 안토니요새에 보관했다.
거짓 유아살해 탄원서를 보내, 아겔라오를 왕이 되지 못하게 했으니, 대제사장이 주관하는 신정도 어림없다는 뜻에서 그렇게 했다.
그런 다음 인구조사를 실시하고, 세금 청부업자들로 하여금 인두세를 걷게 했다. 선린 왕국이었던 유대를 속주 체제로 바꾸고 첫 번째 총독 코포니우스(AD6~9)를 임명했다.
그 후, 퀴리니스가 대제사장 예복을 빼앗아 안토니 요새에서 보관하면서 ‘대화해일’ 행사 때만 빌려주고 다시 가져오기를 반복하다가, 서기36년 빌라도 총독이 귀국한 다음 시리아총독 비텔리우스가 예루살렘에 와서 돌려주었다.


(1권 10장, 헤롯의 유아살해는 음해성 루머 중에서)


                                      출처 - 구글, 대제사장예복 검색 

아그리피나는 풀크루스와 프로클라 자매를 끈끈한 혈연관계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프로클라 남편 폰티우스 필라투스(빌라도)는 게르마니쿠스의 참모를 지냈기 때문에 더더욱 관심을 보였다. 그들 외에도 몇 사람이 더 있었다.
헤로디아는 아그리피나와 단짝이었다. 헤로디아가 유대로 가서 삼촌 안티바(43세)와 재혼했다는 연락이 왔다(AD23).
아그리피나는 헤로디아를 유대로 보내면서 클레오파트라처럼 여왕을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아렌티우스의 부인과 또 다른 사람, 도미티아스도 황궁을 자주 드나들었다. 그런데 황후가 도미티아스로 하여금 풀크루스를 간통으로 고발하게 해서 유배를 보냈다.
간통 상대는 플루니우스였다. 이처럼 간통사건이 또 다시 불거지자, 티베리우스는 때 마침 귀국한 발레리우스 그라투스 총독 후임으로, 필라투스(빌라도)를 유대로 보내면서 프로클라를 따라가게 했다(AD26).
(바이블해커2권 11장, 카프리 섬 은둔은 티베리우스의 고육책 중에서)

안티바와 결혼하는 바람에, 이혼당한 아래다 공주가 나바티아로 돌아갔다. 아레타스 왕이 화를 내면서, 딸의 지참금으로 주었던 사해 근처의 마케루스를 돌려달라면서 괴롭혔다.
안티바는 유황온천으로 유명한 마케루스를 돌려주지 않으려고 했다. 그 때문에 나바티아인들이 수시로 찾아와서 괴롭혔다.
요단강 하구의 베다니에서 활동하던 침례요한도 비난성 발언을 하면서 괴롭히다가 안티바에게 죽임을 당했다(AD28).
더 이상 마케루스에서 살 수 없게 된 안티바는 갈릴리 호반의 어촌을 ‘티베리아’로 명명하고, 거처를 옮겼다(AD29).
새 집으로 이사 간 헤로디아가 친구들을 초대했다.
빌라도 부인 프로클라와 대제사장 가야바 부인 자우레가 초대 받고 갔다. 
물론 두 사람이 갈릴리로 갔다는 기록은 신약성경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서기29년, 예수가 갈릴리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천국 복음을 전했다는 기록이 마태복음5장에 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 ”

여기 어디에도, 헤로디아와 총독 빌라도 부인 프로클라가 예수를 만났다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서기30년 3월14일, 빌라도가 예수를 재판할 당시, 프로클라가 사람을 보내, 다음과 같이 말한 기록은 마태복음27장에 있다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하지 마세요.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습니다.”

이 대목이야말로 프로클라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를 먼발치에서나마 보았거나 소문을 듣고 예수를 알게 되었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1권30장, 인맥으로 예수를 알게 된 클라우디우스 중에서)


이천여 년 전 침례요한이 했던 말을 관습적으로 반복하는 설교자가 많기 때문에 예수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현재도 한창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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