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헤롯왕과 예수 탄생 관련 기사는 역사의 날조

                                                           출처 /  구글 / 헤롯과 동방박사
 

(마태복음2장 1~10절)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라, 이는 선지자로 기록된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라.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 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헤롯왕은 기원전4년에 죽었다. 예수는 서기1년에 태어났다. 그러므로 헤롯왕과 예수 탄생 관련 기사는 시기적으로 부적절 하다.
그런데다가 바리새인들이 말썽을 피우면서 도전해 왔기 때문에 헤롯은 말년을 여리고성 별장에서 보냈다.
예루살렘에 회당이 없었던 바리새인들은 시온 산 정상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들의 집회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한 헤롯은 시온산 중턱에 하스몬 궁전이 있는데도 산 정상에 궁궐을 다시 짓고, 한 동을 바리새인들에게 주었다.
가까이 두고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헤롯이 노환으로 얼마 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바리새인들이 말썽을 피우면서 헤롯은 호랑이 새끼를 키운 꼴이 되고 말았다.
더 이상 바리새인들과 함께 지낼 수 없게 된 헤롯은 여리고성 별장에 가서, 외지에 나가 있던 장성한 두 아들을 불렀다.
장남(36세)과 삼남(32세)이 급히 오다가 괴한들에게 살해당했다.
차남은 3년 전에 죽었고, 아겔라오(19세)와 안티바(16세)는 나이가 어려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자식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헤롯이 죽고, 시리아총독 퀴리니우스(구레뇨)가 급히 예루살렘으로 달려와서 장례를 치르게 했다.
이처럼 불행한 말년을 보냈기 때문에, 예수의 탄생 기사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엮은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고 사실무근이었다.
그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예수는 문맹’이라면서 모욕적일 발언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세 사람 이야기를 먼저 하려고 한다.
 
레자 아슬란(1972~ ) - 이슬람 가정에서 태어났다. 10대에 복음주의 기독교 신학에 심취되었다가 다시, 이슬람으로 개종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20년 동안 신약성서와 초기 기독교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젤롯』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서문에 보면, ‘그 시대에 일어난 갖가지 정치적 운동의 틈바구니 가운데 나사렛 예수를 도대체 어디에 위치시켜야 할지, 엄밀하게 자리매김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예수)는 매우 모순적인 사람이었다. 인종차별을 드러내는 메시지를 설교하나 싶더니 … 박애정신이 깃든 보편주의를 설교하기도 했다. … 어떨 때는 무조건적인 평화를 요구하고 … 어떨 때는 폭력과 갈등을 조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예수를 줏대가 없는 한심한 사람으로 폄하 했을 뿐만 아니라, 자중지란을 일삼던 여러 종파분자들 중에서도 서기70년 파국의 주체였던 젤롯당의 지도자, ‘혁명가 예수’로 만들어 놓았다.
 
존 도미닉 크로산(1943~ ) - 아일랜드 태생의 가톨릭 신학자이다. 역사적 예수 연구와 성서 고고학을 비롯하여 인류학의 권위자이고, 『역사적 예수』책도 출간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 생존 당시 95~97%가 문맹이었기 때문에 예수도 문맹이었다면서 세례 요한이 처형당한 이후, 요한의 뒤를 이은 종말론적 예언자, 자율적인 윤리 교사로서 고작 2-3년 동안 활동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오강남 교수 - 북미 여러 대학과 서울대 등의 객원교수로 비교종교학을 가르치면서 『예수는 없다』와 『또 다른 예수』 책을 출간한 바 있다.
<문맹자 예수가 존경 받는 이유 … 깨달음>이라는 타이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오강남 교수에게 있어서 예수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문맹자일 뿐이다.
 
예수는 정말 문맹이었을까?
가톨릭 신학자 크로산의 주장과는 달리, 유대는 문맹퇴치의 열기로 후끈 달아 있었다.
사두개파 사제들이 주관하는 각종 행사에 동참할 수 없었던 바리새인들은 공부하는 것이 사실상 예배(제사)하는 방법이다. 배우는 일에 게을리 하지 말라면서 회당에서 아람어를 가르쳤다.
유대광야의 수도원 엣세네파 사람들도 문맹퇴치에 열성적이었다.
독신주의를 고집하면서 사내아이들만 데려와서 글을 가치면서 각종 문서를 필사하여 전국에 유포시켰다.
이처럼 경쟁적으로 글을 가르쳤기 때문에 유대 남자 대부분은 글을 쓰고 읽을 수 있었다.
 
바리새파의 최고지도자 가말리엘이 성전 뜰을 거닐고 있을 때, 사람들이 파피루스로 된 책을 보고 있었다.
표지에는 히브리 문자로 <욥기>라고 적혀 있었다.
가말리엘이 화들짝 놀라면서 물었다.
“너희들이 히브리어를 아느냐?”
아람어로 번역한 책이라서 우리도 읽을 수 있다고, 그들이 말했다.
가말리엘이 책을 빼앗아 살펴보고는,
“이것은 금서가 아닌가! 율법에 대해서, 우주에 대해서, 신의 본질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면 죄가 된다는 사실을 왜 몰라?”
이렇게 말하고는, 괭이를 가져오게 해서 책을 땅에 묻어버렸다.
 
거두절미하고, 예수는 아람어와 그리스 학문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예수는 겨자씨 한 알의 비유를 통해서 ‘태생적 창조 정신과 자력갱생의 정신력으로 새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태생적 창조 정신에 대해서 최초로 말한 사람은 그리스인 아낙사고라스(500~BC428)였다.
식물의 생장과 인간의 감각적 지각을 포함하는 모든 질료는, 매순간 그리고 언제나 정신에 의해 활성화된다면서 아낙사고라스는 정신을 에너지(힘)로 보았다. 이와 같은 정신개념을 아리스토텔레스(BC384~BC322)는 높이 평가했다.
아낙사고라스가 말하는 정신은 만물이 존재하는 곳에, 둘러싸고 있는 덩어리 속에 존재한다. 정신은 소용돌이를 일으켜 다양한 실체들의 분리와 결합을 가능하게 한다.
아낙사고라스의 주장에 따르면, 생물체의 성장은 유기체 속에 있는 정신의 힘에 기인하는 것이고, 이 에너지 덕분에 유기체는 주변의 물체로부터 영양분을 흡수 성장한다.
그러므로 식물의 생장과 인간의 감각적 지각을 포함하는 모든 질료는, 매순간 그리고 언제나 정신에 의해서 활성화된다.
그러나 아낙사고라스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만한 기적을 보여주지 못했다.
현실감도 부족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예수는 아낙사고라스가 보여주지 못했던 기적을 보여주었다.
태생적 창조 정신에 대한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못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예수는 태생적 창조 정신과 자력갱생의 정신력으로 무장한 우리 모두를 형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의 아들(인자) ‘나’를 믿으라고 말했다.
‘너와 나’는 생명의 주체이고, 씨앗의 형태로 세상에 왔다.
우리는 빛의 발원체이고, 생수가 흘러나오는 옹달샘이다.
우리 무두가 생명의 향연을 펼치는 순간, 이 세상은 혼인잔치가 된다고 예수가 말했다.
 
바리새인들이 이와 같은 예수의 가르침을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가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죽으니까 시신을 동굴무덤에 넣었다.
“우주에 대해서, 신의 본질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면 죄가 된다는 사실을 왜 몰라?”
이렇게 말한 가말리엘과 아리마대 요셉은 한통속이었다.
예수를 허망한 미스터리와 허망지설 중심에 들게 하고, 참된 가르침을 흔적조차 남지 않게 하려는 비열한 음모자들이었다.
 
그러나 저들의 음모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예수는 철저하게 대비했다.
마태복음 3장에 보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면서 침례요한이 천국을 처음 사용한 것으로 나온다.
그러나 적개심을 자극하는 불순한 구호에 지나지 않았다.
예수는 자신의 메시지를 천국에 숨겨 놓았다.
그렇게 되니까, ‘천국’은 매력적인 어휘로 바뀌었다.
이와 같은 고도의 전략을 알 턱이 없었던 요한의 제자들은 ‘천국’을 열심히 선전했다.
그 바람에 <천국 복음>, <천국의 비밀>, <천국의 열쇠>는 ‘태생적 창조 정신’ 본능에 자극하면서, 예수의 언행은 오늘날과 같은 고도의 물질문명 사회를 건설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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