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예수를 다중인격자로 만든 주범들

                                                                   출처 / 구글 / 헤롯 성전
 
(마태복음23장 13~27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역사적 예수’ 탐구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있다.
역사적 예수 탐구의 아버지는 헤르만 자무엘 라이마루스(1694~1768)이다. 라이마루스는 예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성서를 논리적으로 비판하면서 계시와 기적을 부정했다. ‘그리스도 부활’은 사도들의 날조였다는 논문도 썼다. 하지만 박해가 두려워서 발표하지 않았다.
그가 죽고, 독일 계몽주의 사상가 레싱(1729~1781)이, 라이마루스의 원고를 발견하고 『한 무명인의 단편』이라는 제명으로 발표했다. 이것 때문에 레싱은 교회로부터 격렬한 비난을 받았다.
미국의 건국 아버지였던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1743~1826)도 ‘역사적 예수’ 탐구에 동참했다.
1804년 대통령 임기 중, ‘믿을 만한’ 내용만 추려서 『제퍼슨 성경』을 완성했다.
나사렛 예수의 삶과 도덕에 대해서 특별히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에,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희랍어성경’, ‘라틴어성경’, ‘프랑스어성경’, ‘영어성경’에서 발췌한 것들을 스크랩 하고, 사이사이에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거나 오탈자와 문법을 교정했다.
계몽주의 사상가였던 제퍼슨은 예언이나 기적, 예수부활 같은 초자연적인 내용을 과감히 잘라버렸다. 기독교를 합리적이고 순수한 도덕적 종교로 만들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제퍼슨 성경』은, 미국의 인터넷 종합 쇼핑몰 <아마존>에서 살 수 있다.
‘역사적 예수’ 탐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은 알버트 슈바이처(1875~1965)였다.
1778년부터 1901년 사이에 출판된 600여권에 달하는 ‘예수 생애에 관한 책’을 종합 분석하고, 『예수의 생애 연구사』를 1906년에 발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복음서 저자들이 자신들이 갖고 있던 생각과 시대 배경을 예수에 투사했다, 이상적인 이미지일 뿐 예수에게는 참된 가르침이 없다.”
이렇게 되니까, ‘역사적 예수’ 탐구는 근본 취지가 무색해지면서 시시껄렁하고 치사스러운 내용으로 변질되었다.
유대가 서기70년 파국을 향해서 치닫고 있었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를 어느 지점에 위치시켜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 진 것이, 인종 차별을 부추기는 예수, 무조건적인 평화를 외치는 예수, 폭력과 갈등을 조장한 예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을 싸잡아 비난한 예수, 로마에 맞서 싸운 젤롯당의 예수, 모순 덩어리 예수, 다중인격자 예수가 만들어졌다.
 
지금까지의 ‘역사적 예수’ 탐구는 미로학습의 반복이었다.
슈바이처가 말한 바 있거니와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복음서 저자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생각과 시대 배경을 예수에 투사했다. 그러므로 예수에게는 참된 가르침이 없다는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복음서 저자들은 서기70년 자중지란을 일으키면서 유대를 파국으로 몰고 간 능동적 주체 세력이었다. 최전방에서 허망지설을 유포했다. 유대인들에게 우호적이었던 로마인들에게 무작정 덤벼들었다. 그러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 찾기는 출구가 막힌 미로학습의 반복일 뿐이었다.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죽었을 때,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 총독에게 예수의 시신을 매장할 것처럼 속이고, 동굴무덤에 넣으면서 미로가 만들어졌다.
마태복음27장에 보면 당시의 기록이 자세히 나와 있다.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왔으니 그도 예수의 제자라,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에 빌라도가 내어 주라 분부하거늘,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 (57~61절)
 
얼핏 봐서는 문제될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의 제자가 아니었다. 안토니요새에서 대민업무를 보는 관원이었다. 니고데모와 친구였으며, 바리새인이었다. 그런데도 예수의 제자라면서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바위 속에 판 자기의 새 무덤’에 넣었다고 했는데, 이것도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시신을 동굴무덤에 넣는 행위가 일반화 된 것처럼 보이지만 ‘부활한 그리스도’ 미신을 믿는 자들조차도 동굴무덤에 시신을 넣지 않았다.
갈대로 엮은 들 것에 시신을 놓고 매장했다.
헤롯왕에 의하여 예루살렘에 성전 산이 조성된 다음, 성전 본당을 지으면서 건물이 동쪽을 향하게 했다. 동쪽의 키드론 골짜기 건너편 감람산을 향해서 황금문도 만들었다.
키드론 공짜기는 예로부터 비옥한 땅으로 알려졌다. 그곳에 포도밭이 있었고, 수확한 포도송이는 크기와 맛이 좋기로 유명했다.
그런데 ‘부활한 그리스도’ 미신이 유행하면서, 사람이 죽으면 키드론 골짜기에 묻었다.
하늘에서 메시아가 나타나면, 키드론 골짜기에 묻힌 시신이 제일 먼저 부활한다는 유언비어 때문이었다.

                                                              출처 / 네이버 / 키드론 골짜기

‘역사적 예수’ 탐구에 성공하려면 미로학습을 청산하고, 사복음서 저자들의 얄팍한 속임수를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요셉이 시체를 가져다가 정한 세마포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거기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향하여 앉았더라.’는 대목은 간교한 속임수였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는 겨자 씨 한 알의 비유를 이야기 하면서 ‘태생적 창조 정신’과 ‘자력갱생의 정신력’을 말한 예수를 헬레니즘 외래문화의 유입으로 보았다.
바빌로니아 출신 디아스포라 바리새인들은 그리스 계열의 디아스포라 사두개파 사제들과 생리적으로 맞지 않았다. 알레르기 증세를 보이는 자들이었다.
사제들이 예수를 전면에 내세우면 자신들의 입장이 곤란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략적으로 대응하면서 예수 시신을 동굴무덤에 넣게 되었다.
예수를 은밀한 미스터리와 허망지설 중심에 들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계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고,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볼 수 있도록 잔머리를 굴렸다.
 
‘안식일이 다하여 가고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 새,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 하니라.’ (마태복음28;1~9)
 
서기30년 발생한 ‘예수 사건’을, 35여 년이 지난 서기65~70년경 신원 미상의 작가들이 잔머리를 굴리면서 만든 드라마였다.
그러기 때문에 미로학습을 청산하고, 복음서 저자들의 속임수를 낱낱이 파헤치면서 공격적으로 몰아붙여야 한다.
마태복음27장은 거짓말투성이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50~53절)
성전 뜰 석축 공사는 헤롯 때에 완성되었지만 성전 뜰 평탄 작업은 순례자들이 동원되면서
유월절 다음 날부터 7일간 계속되었다.
성전 뜰에서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흙을 나르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만약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면서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면서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고,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였다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천지개벽 이래의 큰 변란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도 기독교인들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니 이것이야말로 술 취함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복음서 저자들이 만들어 낸 거짓말 중에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도 있다.
사제들이 주관하는 각종 행사에 동참할 수 없었던 바리새인들은 ‘공부하는 것이 사실상 예배(제사)하는 방법이다. 배우는 일에 게을리 하지 말라’면서 학습을 권장했다. 그리고 성전 뜰 곳곳에 모금함을 놓고 자선사업에 주력했다.
바리새파 최고 지도자였던 힐렐(BC70~BC10)은 자선을 최고의 미덕이라고 가르쳤다.
많은 자선이 평화를 가져온다면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으리라.’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까 재산을 몽땅 자선사업에 쓰고, 알거지가 된 자들도 생겨났다.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힐렐이 자기 재산의 1/5 이상은 자선에 쓰지 말라고 말을 바꾸었다.
그런데 마태복음19장에 보면, 예수가 자선에 대해서 말한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21~24절)
예수가 이따위 객쩍은 말장난이나 한 것처럼 만들었다.
예수는 ‘정신력의 기적’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정신력에 대한, ‘자기 확신’에 도달한 사람은, ‘이 산을 명하여 저리로 가라하면 갈 것이요 못할 것이 없다.’고 말한 사람이었다.
예수의 말에 영감을 받고 '정신력의 기적'을 실천한 사람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오늘날과 같은 문질문명은 ‘정신력의 기적’을 보여준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졌다. 이것이야말로 ‘혼인잔치’였던 것이다.
 
헤롯왕 때 시작한 성전 뜰 평탄 작업은 서기54년 완성되었다. 성전 봉헌식을 올리기 위하여 준비 중에 있을 때 갑자기 이단자들이 나타나서 공격하는 바람에 담장 일부가 무너지고, 주랑이 파손되면서 봉헌식이 취소되었다.
성전 무용론을 비롯하여 종파분자들의 자중지란으로 유대는 대혼란에 직면했다.
이집트 출신 디아스포라 유대인이 메시아 행세를 하면서 가세했다.
벨릭스 총독(AD52~60)이 로마병사들을 보내 잡으려고 하니까 유대 광야로 도망가서 잡지 못했다.
사도행전24장에 보면 바울도 자중지란을 일으킨 주범이었다.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소하니라.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송사하여 가로되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감사무지 하옵나이다.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바울)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의 송사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 하니라.’(1~9절)
 
서기62년, 마침내 성전 봉헌식 행사가 시작되었다. 기원전 22년에 시작하여 84년 만에 봉헌식을 올리게 된 것이다. 성전 봉헌식과 함께 아그립바2세의 대관식도 함께 가졌다.
갑자기 봉헌식장에 나타난 미천한 농부 아나니아스의 아들 예수백성들에게 각성하라고 촉구했다.
“화 있을 진저, 예루살렘아! 동쪽에서 들려오는 한 목소리, 서쪽에서 들려오는 한 목소리, 사방에서 들려오는 한 목소리가 있으니 이는 예루살렘과 성전을 대적하는 소리요, 신랑과 신부를 대적하는 소리요, 온 백성을 대적하는 목소리니라.”
미천한 농부의 아들 예수가 이 말을 할 때, 사람들은 봉헌식 준비를 하다가 폭도들에 의하여 행사가 취소(AD54)된 사건을 떠올렸다.
종파분자들의 자중지란으로 유대가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경고성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똑 같은 말을 되풀이 했다.
화가 난 사람들이 예수를 산헤드린에 고발했다.
산헤드린에서 똑 같은 말을 하지 말라고 경고 했는데도 이상한 언행을 멈추지 않으니까 벨릭스 후임으로 온 알비누스(AD62~64) 총독에게 고발했다.
총독은 미치광이 취급을 하면서 예수를 방면했다.
그런데 서기85~90년에 나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태복음에는 나사렛 예수가 서기30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말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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