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광범위한 정보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성공한 사람들


                                                     출처 / 구글 / 가톨릭 굿 뉴스 모바일 검색
 

(고린도전서13장 1~13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서기 397년 ‘카르타고의 종교회의’에서 성경이 확정 된 다음, 무세이온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가르치던 ‘히파티아’가, ‘미신을 진리처럼 가르치는 건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가 서기415년 3월, 무참히 살해당했다.
 
기독교 신학을 천박한 지성이라고 말한 사람이 또 있었다.
“기독교인들은 점잖은 주인 앞에서는 한 마디도 못하다가,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노예, 어린이, 여자들 앞에서는 씨부렁씨부렁하면서 기독교를 전한다. 이런 수준의 인간들이 믿는 종교는 미래가 암담하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원로원 의원 신분이었고,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절 집정관(AD92)을 역임했으며, 서기130년을 전후해서 소아시아 총독이었던 ‘가이우스 율리우스 켈수스’였다. 
학자이면서 대단한 애서가였던 켈수스는 양피지로 된 1만2천권의 장서를 소장하고 있었다. 요샛말로 하면, 광범위한 정보의 데이터베이스화에 성공한 사람이었다.
켈수스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대표적 기독교 신학자였던 오리게네스(185?~251)에게 자신이 쓴 『참된 가르침』과 240개 항목의 글을 암브로시우스(가톨릭 신부)를 통해 보냄으로써 철학적 토론을 제안했다.
『참된 가르침』과 켈수스에 대한 기록은 극히 일부만 남아 있다. 두 사람의 토론은 1846년 야크만에 의해 편집되었고, 1873년 카임이란 학자에 의해 완성되었다.
원본은 없어졌지만 오리게네스의 글에 의해서, 켈수스가 어떤 입장이었는지를 역 추적하면서 만들어진 다섯 문항은 다음과 같다.
(1), 켈수스는 유대교와 철학적 관점에서 기독교의 가르침에 대해서 조목조목 공격했다.
기독교가 최상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당대의 현인들이 모두 그와 같은 지식을 보유하고 있으며, 기독교의 진리는 보편적 철학에서도 능히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2), 예수는 메시아가 아니다. 거룩한 사명을 확신하지도 않았다. 기적과 같은 사건들은 허구적인 이야기이고, 설사 그런 것들이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이집트인들의 주술적 전승을 수용한 것일 뿐이다.
(3), 켈수스는 철학자 관점에서 기독교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기독교인들은 스스로 결속을 다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는 수많은 분파와 차이점들이 있고, 기독교인들에게는 지혜와 선도 없고, 무지하며,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죄인들이라고 했다.
(4), 켈수스는 역사의 관점에서 기독교를 비판했다.
기독교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관심은 플라톤의 이론을 잘못 해석해서 적용한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영이라고 말하는 것 역시 스토아학파의 ‘모든 것을 관통하는 영이며, 모든 것을 포함하는 영’이라는 개념을 반복한 것일 뿐이다.
종말론도 헬라인들이 쓴 시문과 철학자들에게서 차용한 것이며, 몸의 부활에 대한 이론도 옛날에 있었던 영혼의 윤회사상 즉 이 세상의 타락이라고 했다.
(5), 기독교인들은 기독교라는 숭배자 집단(공동체)에서 하루빨리 나와야 한다. 기독교가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주관하려는 ‘헛된 희망’을 버리고, 로마제국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기독교인들은 신뢰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켈수스와 오리게네스의 토론은 계속되지 못했다.
오리게네스가 데키우스 황제(249~251)의 박해로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독교를 적대시 하면서, 미신을 진리처럼 가르치는 건 끔찍한 일이다. 천박한 지성을 가르치면 미래가 없다고 말한 이들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오늘날과 같은 발전과 번영을 누리고 있으니,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여기에 대한 문제의 해답을, ‘프랜시스 베이컨’이 1620년에 발표한 『신기관』에서 찾을 수 있다.
베이컨은 인간이 지식을 추구할 때 범하는 네 가지 오류를 '우상'에 비유했다.
인류의 공통적인 지적 결함으로 생기는 오류에 빠지면 ‘종족의 우상’을 섬기는 자가 된다.
개인의 개별적인 지적 특성으로 생기는 오류에 빠지면 ‘동굴의 우상’을 섬기는 자가 된다.
언어 사용에서 생기는 오류에 빠지면 ‘시장의 우상’을 섬기는 자가 된다.
스콜라 철학과 같은 잘못된 철학에 빠지면 ‘극장의 우상’을 섬기는 자가 된다.
 
인간이 지식을 추구할 때 빠지는 오류에 대해서 말한 이가 또 있었다.
서기30년, 십자가상에서 죽은 나사렛 예수가 말했다. (마태복음13장 18~23절)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는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린 자요,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 라고 했다.
베이컨이 말한 네 가지 우상과 하나도 다를 게 없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예수의 가르침에는 베이컨에게 없는 삶의 지혜가 있다. 그 지혜로 오류를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예수는 겨자씨 비유를 통해서, 사람은 ‘태생적 창조 정신과 자력갱생의 정신력으로 무장한 존재’이기 때문에, 거짓 선생들을 조심하고, ‘술에 취하지 말라’고 했다.
 
아브라함 이후, 정통 유대인들은 지상낙원에 대한 소망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아무리 고단한 삶을 살더라도 생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살 행위를 죄악으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영혼 따위로 위안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죽어서 간다는 사후 세계도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현세가 중요하다고 여기면서 생명에 대한 특별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생명 차원에서의 나는 신비롭고 소중한 존재이다. 나는 생명의 주체이고 씨앗의 형태로 세상에 왔다. 나는 빛의 발원체이고, 생수가 나오는 옹달샘이다.
나와 우리가 생명의 향연을 펼치는 순간, 이 세상은 혼인잔치가 된다고 예수가 말했다.
 
그러나 성전에서 사제들이 주관하는 각종 행사에 동참할 수 없었던 바리새인들은 ‘공부하는 것이 사실상 예배(제사)하는 방법이다. 배우는 일에 게을리 하지 말라.’면서 회당에서 무언가를 가르치면서 성전 뜰 곳곳에 모금함을 놓고 자선사업에 주력했다.
바리새파 최고 지도자였던 힐렐(BC70~BC10)은, 자선을 최고의 미덕이라고 가르쳤다.
많은 자선이 평화를 가져온다고 선전했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있으리라.’
‘겉옷을 달라는 자에게 속옷까지 벗어주라.’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할 수 없듯이,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이와 같은 객쩍은 언어유희에 해당하는 말장난을 하면서 지식 상품을 다량으로 생산했다.

                                                         출처 / 구글 / 영화 헬렌 켈러
 

이처럼 미사여구로 사람의 마음을 현혹시키는 지적 상품이 지금 이 시간에도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고린도전서13장의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 ’ 하면서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선전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 헬렌 켈러는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가 아니라고 부정했다.
“만일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믿는다면, 하나님이 노한다거나 변덕스럽다거나 쉽게 변하는 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터무니없는 개념들은 (성경)이 써졌던 시대의 미개한 야만주의를 반영한 것에 틀림없습니다.”
헬렌 켈러는 태어나고 얼마 후, 심한 병에 걸려서 청각과 시각을 잃었다. 그러나 장애를 극복하고 소중한 격언을 남긴 작가, 교육자, 사회주의 운동가가 되었다.
헬렌 켈러는 7살 때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자서전에 썼다.
“누군가 펌프에서 물을 긷고 있었는데, 선생님은 물이 뿜어져 나오는 꼭지 아래에다 내 손을 갖다 대셨다. 차디찬 물줄기가 꼭지에 닿은 손으로 계속해서 쏟아져 흐르는 가운데, 선생님은 다른 한 손에다 처음에는 천천히, 두 번째는 빠르게 ‘물’이라고 쓰셨다. 선생님의 손가락 움직임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나는 마치 얼음 조각이라도 된 양 가만히 서 있었다. 갑자기 놓쳐버린 그래서 가물가물 흐릿한 의식 저편으로부터 서서히 생각이 그 모습을 드러내며 돌아오는 떨림이 감지됐다. 언어의 신비가 그 베일을 벗는 순간이었다.”
 
예수 생존 당시의 바리새파 랍비들은 객쩍은 언어유희를 즐기면서 미신을 진리처럼 가르쳤다.
르네상스를 전후해서 기독교는 예술적 재능이 뛰어난 화가들로 하여금 천박한 지성을 명화로 그리게 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종교적 감동과 종교 외에는 다른 세상을 상상할 수 없게 한다. 
그런데다가 십자가상에서 죽은 예수를 명화로 그리게 해서, 사람들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십자가상에서 죽은 예수의 모습을 보면서 잔인함, 무지, 미신의 이미지가 떠올라야 정상이다.
거기서 사랑과 용서와 구원을 생각했다면. 그것이야말로 온갖 논리로 분칠한 궤변이다.
시각과 청각의 장애인이었으면서도 헬렌 켈러가 이성과 지성적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차디찬 물줄기를 느끼면서부터였다고 했다.
그 후, 사물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지식을 쌓으면서 광범위한 정보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성공했다.
 헬렌 켈러는 의미심장한 말도 했다.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보다 더 불행한 자는, 눈으로 앞은 보지만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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