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다니엘이 말한바…’는 해프닝으로 끝난 역사의 날조

                                                  
                            출처 / 구글 / 감람산에서의 설교  
 
 

(마태복음24장 15~21절)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사도신경>의 근간은 서기150년 그리스도교 최초의 신앙고백으로 알려진 <로마신조>로 인식되고 있다.
그 후, 니케아 종교회의(AD325), 콘스탄티노플 회의(AD381), 에베소 회의(AD431), 칼케돈 회의(AD451)를 거치면서 <사도신경>은 수정 보완되었다.
 
기독교인들이 <사도신경>을 소리 내어 함께 암송하는 이유로는, 기독교 복음의 본질적인 진리이고, <사도신경> 토대 위에 교회가 세워졌고, 공적인 신앙고백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로마신조> 이전의 원시교회 시절에는 ‘부활한 그리스도’ 미신이 지배적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예수 사건은 ‘부활한 그리스도’ 미신이 유행하던 시절, 종파분자들의 자중지란이 극에 달하면서 사회적 합의(?)에 따라 성사된 일이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부활한 그리스도’ 미신을 거론하다가 살해당한 사람이 또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의 무세이온에서 수학과 천문학을 가르치던 히파티아는 미신을 진리처럼 가르치는 건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가, 서기415년 3월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대주교 키릴로스의 사주를 받은 괴한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시신은 무참히 훼손되었다.
 
바울은, ‘부활한 그리스도’ 미신을 기독교로 바꾼 화제의 인물이다.
바울이 만든 기독교와 예전부터 있던, ‘부활한 그리스도’ 미신이 어떤 면에서 다른가를 논리적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무지와 편견에서 미신이 발생한다. 공포와 증오를 미신이 조장한다. 과학적 또는 합리적 근가가 부족한 것이 미신이고, 맹목적으로 믿음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미신이다.
사물을 옳게 판단하고 진위, 선악, 미추를 식별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미신이다.
미신은 이성을 망가트리고 적대 감정에 따라 행동하게 한다.
이처럼 미신에 대해서 알고 나니까. ‘부활한 그리스도’ 미신과 바울이 창시한 기독교가 영락없이 판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기30년 유월절 하루 전날(3월13일), 예수가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같은 해 11월 중순, 수전절 기간 중에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사건 현장에 바울(사울)이 있었다.
스데반은 유대 역사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다가 ‘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된다.’ 는 말을 했고, 그 말에 흥분한 사람들이 자신의 옷을 벗어서 바울에게 던지고, 스데반을 향해서 돌을 던져 죽였다.
그 후, 바울은 동료들의 반감을 피할 요량으로 ‘40인의 랍비 특공대’에 들어가서 미신을 믿는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겼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열성적이었다.
이처럼 미신 타파에 앞장섰던 바울이 갑자기 변절자가 되었다가, 20여년이 지난 후부터 글을 써서 기독교를 알리기 시작했다.
 
바울이 쓴 서간문은 서기50~67년 무렵 나왔다. 그런데 서간문에 등장하는 예수는 이름만 같을 뿐, 신화 속의 가상인물이었다.
알버트 슈바이처가 이미 말한 바 있거니와 바울이 말하는 예수는 ‘이상적인 이미지’일 뿐, 실존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데 서기65~70년경에 나온 마가복음에는 예수의 역사적, 지리적 배경이 첨가되면서 혼선과 잡음이 생기게 했다.
그리고 서기85~90년경에 나온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예수의 역사적 지리적 배경에, 예수의 탄생설화와 부활에 대한 세부 내용이 윤문되었다.
그라니까 바울이 만든 ‘이상적인 이미지’에 예수의 역사적, 지리적 배경이 첨가되고, 예수의 탄생설화와 부활에 대한 세부 내용이 윤문 되면서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뒤범벅이 되었으면서도 기적 같은 놀라운 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의 역사적 지리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예수의 비유와 산상수훈을 함께 전했다.
이것이야말로 밭에 감춰진 보물이었다.
어둠을 밝히는 한 줄기 빛이었다.
사람들은 예수의 비유와 산상 수훈에서 영감을 받고 지혜의 눈이 열리면서 ‘태생적 창조 정신과 자력갱생의 정신력’을 발휘했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물질문명의 비약적 발전을 가능케 했다.
미신이 성행하는 가운데에서도 사람들은 사물을 옳게 판단하고 진위, 선악, 미추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이것은 꿀벌의 횡포를 참아가면서 벌의 깃털에 뭍은 꽃가루에 만족한 민초들의 형연이었고, 대자연의 섭리였다.
 
이와 같은 자연의 섭리를 알 턱이 없는 복음서 기자들은 ‘부활한 그리스도’ 미신을 선전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예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다.
마태복음24장 15~21절에 보면, 예수가 승천하기 직전 감람산에서 제자들에게 ‘다니엘이 말한바…’를 이야기 했다고 적어 놓았다.
서기40년 5월 말경, 칼리굴라 황제가 유대인들이 자발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에 신상을 세우게 하라는 공문을 유대총독 헤레니무스 카피토에게 보냈다.
이때부터 재앙을 선포한다는 예언자들이 나타나서, 신상이 세워지는 날이 세상 종말이나 되는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그런데 세상 종말은 오지 않았다.
칼리굴라가 근위대장에게 살해당하고,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급히 전령을 보내 예루살렘 성전의 신상 건립을 없었던 일로 하라고 했다.
서기41년 2월10일, 신상 건립은 해프닝으로 끝났기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역사적인 날이었다. 그런데도 거기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이 없고, 얼토당토않게 예수가 서기30년 예언한 것처럼 만들어 놓았다.
성경에는 이와 유사한 기록이 대단히 많다. 그래서 기독교와 ‘부활한 그리스도’ 미신이 하나도 다를 게 없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성경은 명예롭지만 상당히 유치하고 원시적인 전설들의 집대성이며, 아무리 치밀한 해석을 덧붙이더라도 이 점은 변하지 않는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성경은 수많은 익명의 저자, 편집자, 필사자 등이 9세기에 걸쳐 지리멸렬한 문서를 혼란스럽게 엮고 수정하고 번역하고 왜곡하고 개정한 선집에서 기대할 만한 바로 그런 양상을 보여준다. - 리처드 도킨스
기독교인들의 믿음은, 무엇이 진실인지 알고 싶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앙은 거짓보다 더 위험한 진실의 적이다. - 프리드리히 니체
어리석은 자들은 건방진(종교적) 확신에 차 있고, 이성적인 사람들은 의심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 버트런드 러셀
이성이 작용할 수 있으려면 먼저 개념(사도신경)이 명확해야 한다. 교인들 누구도 명확한 삼위일체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다. - 토머스 제퍼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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