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헤로디아 때문에 신세 망친 안티바

                                                                출처 / 구글 / 헤롯왕과 살로메
 

(마태복음14장 3~11절)
‘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민중이 저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민중을 두려워하더니 마침 헤롯의 생일을 당하여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 대로 주겠노라 허락하거늘 그가 제 어미의 시킴을 듣고 가로되 침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왕이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함께 앉은 사람들을 인하여 주라 명하고,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옥에서 목 베어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그 여아에게 주니 그가 제 어미에게 가져 가니라.’
 
아그립바가 왕 칭호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보에뚜스 가문의 사제들만큼이나 심기가 불편한 사람이 헤로디아였다.
로마군 장교로 복무 하던 남편이 죽고, 과부가 된 헤로디아는 티베리우스를 미워하면서 사사건건 말썽을 피우던 아그리피나와 단짝이었다.
헤로디아가 유대로 갈 때, 클레오파트라처럼 여왕을 시켜주겠다는 약속을 아그리피나가 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헤로디아가 유대로 가기 얼마 전, 동생 아그립바와 크게 다툰 적이 있었다.
멀쩡한 가정을 파탄 내서 좋을 게 없다는 뜻에서 아그립바가 가지 말라고 했다.
안티바와 나바티아의 아래다 공주는 금실이 좋고, 두 사람 사이에는 장성한 아들 아즈버니우스도 있었다.
그런데도 헤로디아가 살로메를 데리고 유대로 갔다.
 
서기23년, 안티바(43세)와 헤로디아(38세)가 재혼했다.
이혼을 당하고 슬픔에 잠긴 딸의 모습을 보게 된 나바티아의 아레타스 왕은 화를 내면서, 딸의 지참금으로 주었던 마케루스를 돌려달라고 했다.
사해 동쪽에 있는 마케루스는 유황온천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아레타스 왕은 무장한 사람들을 보내 수시로 괴롭혔다.
유대광야의 수도원 엣세네파 사람들도 음행, 탐욕, 타락이라는 세 마리 뱀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안티바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일부다처제, 부정한 방법으로 모은 재산, 아주머니와 생질의 결혼을 세 마리 뱀에 비유했다. 그러니 숙부와 생질 관계였던 안티바와 헤로디아는 표적이 되기 십상이었다.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 아지트를 마련하고, 독자적으로 활동하던 침례요한도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할 기회로 여기고 선봉에 나섰다가 안티바에게 죽임을 당했다.
이처럼 두 부류의 적과 싸우게 된 안티바는 갈릴리 호반의 작은 어촌에 새집을 짓고, ‘티베리아’로 명명한 다음, 서기28년 거처를 옮겼다.
 
새 도시를 건설하고 안티바는 황제의 환심을 사려고 했다. 그러나 티베리우스는 유대의 종파분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자중지란을 일으키곤 했기 때문에 선린 왕국으로 격상 시킬 계획은 애초부터 갖고 있지 않았다.
 
티베리우스가 죽고, 칼리굴라가 황제가 되니까 헤로디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그리피나와 단짝이었던 자기를 칼리굴라가 모른 체 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안티바는 왕 칭호를 욕심낼 입장이 아니었다. 그래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아그립바에게 왕 칭호를 주고, 빌립이 죽고 공석 중인 유대 북부 지역으로 가라고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서둘러 칼리굴라 황제를 만나기 위하여 길을 나섰다.
   
아그립바는 필립의 땅에 만족할 사람이 아니었다. 명실상부 유대 왕이 되는 게 소원이었다. 그래서 안티바를 모함하는 편지를 그들보다 먼저 보냈다.
<황제 폐하, 안티바는 아래다 공주와 이혼한 후, 나바티아 인들의 미움을 사서 사해 근처의 마케루스에서 북쪽 갈릴리로 쫓겨 갔습니다. 그런데도 마케루스를 되찾겠다면서 식객들을 불러 모으고, 각종 무기를 대량으로 사들이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왕 칭호를 주신다면, 안티바는 나바티아를 비롯하여 다른 부족들과도 싸울 것입니다. 그런데다가 폐하께서 저에게 허락하신 왕 칭호를 가지고 듣기에 민망할 험담도 합니다.
‘칼리굴라는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가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멍청하고 무식한 아그립바에게 왕 칭호를 줄 수 있겠는가?’
저를 멍청하다고 말한 것은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폐하를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아이 취급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에 …>
 
 
아그립바가 보낸 사람이 먼저 로마에 도착하고, 칼리굴라에게 편지를 전했다.
로마에 도착한 안티바는 근위대 병사들에게 붙잡혀 갈리아의 루그두눔(리용)으로 유배되는 죄수의 신세가 되고 말았다.
루그두눔은 오늘날 프랑스의 리옹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서 헤로디아는 당혹스러워 하다가 안티바를 따라 루그두눔으로 갔다.
근위대 병사들이, ‘당신에게는 죄가 없으니 따라오지 말라’고 했는데도 고집을 피우면서 따라갔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2, 침례요한과 안티바 그리고 예수

21, 헤롯왕과 예수 탄생 관련 기사는 역사의 날조

22, 헤롯의 유아살해는 새빨간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