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갈릴리 사람들을 논박함』

                                                             출처 / 구글 / 예수 승천


(사도행전1장 1~11절)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어느 때입니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어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려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어 가신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서기30년 3월13일은 유월절 하루 전날이고, 예수가 십자가상에서 사망한 날이다.
그로부터 50여 일이 지난 5월10일, 맥추절(오순절)에 베드로를 비롯하여 갈릴리 사람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와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나 잡던 무식한 어부들이 어떻게 성령강림과 같은 엄청난 일을 주도할 수 있었을까?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수십 년 후에 써진 것으로 밝혀진 이상 신원미상의 작가가 성령을 빌미로, 자기 생각을 갈릴리 사람들이 한 것처럼 조작할 수 있다.
그런데다가 서기30년 당시의 갈릴리 사람들은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붙잡혀 매를 맞고, 함구령이 내린 상태에서 풀려났기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부활한 그리스도> 미신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대처한 사람이었다.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예수의 시신을 동굴무덤에 넣었다는 사실을 알고, 급히 사람을 보내 사흘 동안이나 무덤을 지키게 했다.
파수꾼으로부터 무덤에서 이상한 징후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보고도 받았다. 그래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맥추절에 갈릴리 사람들이 다시 나타나서 모임을 가졌다는 보고를 받고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갈릴리 사람들도 처음에는 병자들을 찾아다니면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건강을 되찾아 주겠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가야바는 안심했다(사도행전4:10).
가야바는 예수를 끝까지 지켜주지 못했기 때문에 연민의 정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갈릴리 사람들에게도 호의적이었다.
그런데 대제사장이 자신들에게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다음부터 갈릴리 사람들은 이상한 말을 했다. 죽은 예수가 부활했다면서 자신들이 증인이고 말했다.
가야바는 그들을 불러, 다시는 그따위 말을 하지 못하도록 엄중하게 꾸짖었다.
사도행전 4장에 보면,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가야바가 주의를 준 기록이 있다.(17~18절).
 
이처럼 신중을 기하면서 가야바는 시기적절하게 대처했다. 그런데다가 가야바의 언행으로 미루어 볼 때, 예수의 부활과 승천은 가당치 않았다.
그들이 말하는 부활은 근거가 없는 주관적인 신념일 뿐이었다. 그런데다가 사도행전은 논리적으로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작가들도 예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던 제자들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다.
서기65~70년에 나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가복음 16장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희에게 나타나시나 믿지 아니하였고,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 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12~14절)
 
서기80~90년에 나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요한복음21장도 마찬가지였다.
‘시몬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으러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신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1~6절)
 
서기85~90년에 나왔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태복음28장에도, 제자들이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올라 예수를 뵈옵고 경배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었다고 되어 있다.
 
누가복음24장에도,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하시면서 손과 발을 보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제자들조차도 믿지 못하는 예수 부활을, 우리가 믿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기독교 주장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출처 / 구글 / 율리아누스
 
마태복음12장에 보면,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32절)는 문구가 있다.
베드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성령을 속여서 죽었다면서 공갈과 협박을 한 것처럼, 현대인들에게도 동일한 수법을 쓰고 있었다.
지능적 범죄는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려고 혐의가 타인에게 있는 것처럼 조작한다. 복음서는 하나같이 갈릴리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글을 완성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알지 못했던 로마황제 율리아누스(AD331~363)는 그리스도교를 공격하는 글을 썼으면서도 제목을 『갈릴리 사람들을 논박함』이라고 했다.
기독교의 배교자로 알려진 율리아누스는 성경만 읽으면 세상 만물의 이치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성직자들이 창고 속에 파묻었거나 불태워졌던 파피루스를 되살리겠다는 탐구 정신을 보인 학자였다.
기독교도에게 탄압과 박해를 가하면서도 어떤 경우에도 ‘순교자’를 만들지 말라고 지시한 황제였다.
페르시아 원정에 군사를 이끌고 나섰다가 어느 병사의 창에 맞아 죽었다. 기독교도 출신 어느 병사가 쏜 화살에 맞아 죽었다는 설도 있다.
서른한 살에 죽었지만 그가 쓴 연설문 11개, 서간문 80여 개가 현존한다.
그의 비극적 생애는 많은 전설로 전해지고, 입센, 메레시코프스키 등의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율리아누스가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게 하는 등의 특단의 조치는, 서기30년대의 사회상을 복원해서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율리아누스는 사도행전이 62~63년에 나왔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스도교를 공격하면서도『갈릴리 사람들을 논박함』에 머물고 말았다.
오늘날의 학자들 중에도 ‘갈릴리 사람들 연막’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베드로를 비롯하여 갈릴리 사람들을 구속하고, 산헤드린에서 재판을 할 때 가말리엘이 갈릴리 사람들을 비호하는 발언을 했다.
“이전에 드다(AD44)가 일어나 스스로 자랑하매 사람이 약 사백이나 따르더니 그가 죽임을 당하매 좇던 사람이 다 흩어져 없어졌고, 그 후 호적할 때에 갈릴리 유다(AD4)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좇게 하다가 그도 망한즉 좇던 사람이 다 흩어졌느니라.”
두 사건의 연대순서가 뒤바뀐 것처럼 보인다.
의문을 제기한 학자들은 부주의 사고로 순서가 뒤바뀌었거나 누군가의 착오였다면서 궁색한 별명을 했다.
‘라이프 성경사전’도 문제가 있음을 시인했다.
드다 사건은 가말리엘이 변호하던 때와는 무려 10년 이상의 시간적 차이가 난다면서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가말리엘이 무엇 때문에 갈릴리 사람들을 비호하는 발언을 하면서 드다와 갈릴리 유다를 예로 들었는지,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사도행전이 서기62~63년에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드다를 먼저 말하고 나중에 갈릴리 유다를 말해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기독교는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 그리고 가말리엘을 비롯하여 바리새인들이 바통을 이어받으면서 <예수 사건>과 <예수 부활과 승천> 그리고 <오순절 성령 강림>을 조작했다.
그런데도 무조건 부활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한다. 이것이야말로 괴변이고 독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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