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예수사건 뒤에 숨겨진 비밀

                                     출처 / 구글 / 검색, 부활

(요한복음20장 1~15절)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 하겠다 하니,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 새, 둘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도 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 가니라.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가로되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합니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모습을 보나 예수이신 줄 알지 못 하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 가리이다.

요한복음20장을 보충 설명하면 다음과 갔다.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동굴무덤으로 가지고 갈 때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뒤를 좇아가서 무덤의 위치와 시체를 어떻게 했는지 보고 갔다.
삼일이 지난 이른 아침, 두 여인이 무덤에 와서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보고, 되돌아가서 베드로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달려와서 무덤 속에 세마포만 있는 것을 보고는 그냥 돌아갔다.
예수의 시신이 사라진 것을 슬퍼하면서 여인들이 울고 있을 때 신원을 알 수 없는 두 사람이 나타나서 예수가 부활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여인들 앞에만 나타났다.
니고데모와 아리마대 요셉이 또 다른 음모를 꾸미려고 보낸 사람일 가능성이 아주아주 높아 보인다.

예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이룬다. 그런데도 기독교는 부활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부활을 말한 이가 천사, 혹은 동산지기 같다고 말했다.
마태복음28장에 보면, 무덤을 지키던 파수꾼들이 성전의 장로들과 대제사장들에게 부활 사실을 알리니까, 무덤을 지키던 군병들에게 돈을 주면서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잠깐!’
복음서는 동시대를 살았던 목격자들의 기록이 아니다.
복음서 저작년도가 동일하지 않다는 연구 결과가 이미 학계에 보고된 바 있다.
학자 간의 논쟁도 이미 끝났다.
사도행전은 62~63년에 나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예수의 역사성과 지리적 배경을 설명한 마가복음은 65~70년에 나왔다.
예수의 신성을 강조한 요한복음은 80~90년에 나왔다.
예수의 탄생설화와 부활에 대한 세부 내용이 윤문 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85~90년에 나왔다.
이처럼 종파분자들의 자중지란으로 유대가 멸망한 서기70년을 전후해서, 복음서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정치적 혼란과 ‘메시아 도래의 미신’이 성행하던 당시의 시대상을 고스란히 반영했다고 봐야 한다.

독일의 신학자 루돌프 불트만(1884~1976)은 신약성경을 가지고 역사적 예수를 찾으려는 것은 불가능하고,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찾아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을 골백번 넘게 생각을 해봐도 맞는 말이다.
약소민족으로 피해망상증을 보이던 유대인들은, 우호적이었던 로마인들을 무턱대고 적으로만 간주했다.
그 때문에 종파분자들의 자중지란은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닫고 있었다. 사회불안은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예수는 자신의 가르침이 시기상조임을 알고, 철저하게 대비했다.
비유가 아니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예수가 말한 <천국 복음>, <천국의 비밀>, <천국의 열쇠>도 비유일 뿐이다.
겨자씨 한 알의 비유는, ‘태생적 창조 정신과 자력갱생의 정신력으로 새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바리새인들은 비유의 뜻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를 미워했던 것이다. 상처 받은 자존심 때문에 예수의 시신을 동굴무덤에 넣었다.
예수를 은밀한 미스터리와 허망지설 중심에 들게 하려는 음모는 바울에 의하여 ‘부활한 그리스도교’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 이것이 예수 사건의 전모였다.
그 때문에,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 찾으려는 것은 불가능해졌고, 찾아야 할 필요도 없게 되었다.
그러나 시대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예수 사건의 전모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역사적 예수를 찾아 나선 사람들에 의하여, 예수사건 뒤에 숨겨진 비밀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다. 


로마에서 기독교가 공인된 이후, 활동한 최초의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AD355~415)는 ‘십자가상에서 죽은 누군가가 부활하여, 구세주가 되었다는 미덥지 못한 이야기를 진리처럼 가르치는 건 끔찍한 일이다’고 주장했다.
히파티아는 부친(테온)의 뒤를 이어, 수학과 철학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자연과학과 문헌학을 연구하고 새로운 지식을 가르치던 ‘무세이온’의 선생이었다.
그녀의 강의를 들으려고 사람들이 몰려왔다. 인격과 실력을 골고루 갖춘 그녀에게 사람들은 고개를 숙여 존경을 표했다.
그녀가 쓴 수학과 천문학 책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제목만 전해지고 있다.
그녀의 행적, 출생, 사망에 대해서도 부정확하거나 이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성경에 대한 그녀의 비난성 발언은 다른 이들의 작품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화는 우화로, 신화는 신화로, 불가사의는 시적 판타지로 가르쳐야 한다. 미신을 진리처럼 가르치는 건 끔찍한 일이다. 유약한 사람들은 그런 가르침을 진리로 받아들이고 나서, 엄청난 고통을 겪는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비극적인 사실은, 미신을 가르치면서도 만족감을 느낀다는 점이다.”
서기 415년 3월 어느 날, 무세이온에서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히파티아는 대주교 키릴로스의 사주를 받은 괴한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시신도 무참히 훼손되었다.
그녀는 마녀 사냥의 첫 번째 표적으로 허망하게 죽임을 당했다. 그러나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에 있기 때문에 불행 중 다행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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