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엄포를 놓다가 감정싸움에 휘말린 빌라도


(마태복음27장11~16절)
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 아무 대답도 아니 하시는지라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저희가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거 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한 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명절을 당하면 총독이 무리의 소원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빌라도가 물어 가로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
바라바입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저희가 더욱 소리 질러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대답하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 ‘멘 깁슨’이 감독한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2004년 수입 개봉 당시 종교인들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에게도 극찬을 받으며 흥행 돌풍을 일으킨 바 있다.
그 영화가 최근 부활절(2017년 4월)을 전후해서 영화관에서 상영 중에 있다.
<예수가 지상에서 보낸 마지막 12시간> 이라는 포스터의 부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다락방에 갔던 예수가 감람산에 숨어 있다가 원로사제 안나스에게 고발당하고 대제사장 가야바, 총독 빌라도, 헤롯 안티바, 그리고 다시 빌라도 총독에 가서 십자가처형을 받게 된 시간과 공간 이동을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예수가 로마 병사들에게 채찍질 당하고 선혈이 낭자한 모습은 보기에도 민망했으며, 제작자들이 의도적으로 유대인들에 대한 증오심을 유발시켰다는 비난을 받을 만 한 작품이었다.
그런데 폭력성을 드러낸 로마병사들의 심리 상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빌라도 총독은 예수를 심문하고, 이렇다 할 죄과를 찾지 못했다.
그런데도 예수를 죽이라는 유대인들 성화 때문에 고민하다가 가벼운 매질을 하고 방면하겠다는 기사가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에 있다.
그것을 가지고, 빌라도 총독이 유대인들의 동정심을 사려고 했다고 본 것 같았다.
어찌되었거나 로마병사들은 무자비하게 채찍을 휘둘렀다.
예수는 살갗을 파고드는 엄청난 고통에 괴로워했다.
영화를 보는 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동정심을 보이지 않았다. ‘십자가 처형’을 연이어 외치면서 총독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


예수의 생애를 영상에 담은 작품은 많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비교할만한 작품으로는, 미국 ‘내셔널지오그래픽채널’에서 제작한 <킬링 지저스>를 사례로 설명할 수 있다.
<킬링 지저스>는 헤롯왕이 유대를 통치하던 시절부터 스토리가 펼쳐진다.
헤롯왕은 언제나 자신이 행사하고 있는 권력을 놓칠까 불안해했다.
동방 박사가 ‘새로운 유대인의 왕’을 보러 왔다는 소식에 불안감은 고조되면서 베들레헴의 2살 미만 남자 아이들을 죽이라는 잔인한 명령을 했다.
그러나 어린 예수와 그의 가족들은 이미 탈출한 뒤였다.
26년 후, 성인이 된 예수는 자신의 메시지를 전파하면서 신자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 무렵, 헤롯왕의 아들 안티바와 총독 빌라도는 예수의 영향력이 커져가는 것을 우려했다.
이와 같은 스토리 전개는 성경의 기록에 근거한 것이라서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나 성경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기원전 4년에 죽은 헤롯왕과 4년 후 태어난 예수는 시간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헤롯왕의 유아살해 명령도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필자는 그와 같은 사실을 입증하기 위하여 <바이블해커> 책을 이미 세 권이나 출간했다.
그 책에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생판 다른 내용이 들어 있다.
빌라도 총독을 비롯하여 로마의 최고 권력자였던 ‘티베리우스’와 ‘클라우디우스’는 유대인들에게 우호적인 사람들이었다.
원로사제 안나스을 빼고, 가야바를 비롯하여 사두개파 사제들도 예수를 배척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달리, 침례요한의 제자들과 예수를 다락방으로 유인한 베다니 사람들, 그리고 니고데모를 비롯하여 바리새파 랍비들이 예수를 죽이지 못해 안달을 부리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예수가 두 번째로 빌라도 법정에 갔을 때, 죄명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의 동류’에서 ‘유대 왕을 사칭한 자’로 바뀌었다.
유월절을 예루살렘에서 보내기 위하여 수십만 명이 운집한 축제 기간 중에, 일단의 무리가 몰려다니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 총독은 예수에게 가벼운 매질을 하고, 방면하려고 했다.
그러자 누군가가 유대 왕을 사칭한 자를 풀어주면, 당신은 카이사르 충신이 아니라면서 억지소리를 했다.
그 소리에 화가 난 총독이 감옥에 있던 흉악범 바라바를 대신 방면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엄포용이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렇게 하라면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았다.
화가 머리꼭대기까지 치밀어 오른 총독은 바라바를 방면했다. 백성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총독으로써는 적절치 못한 처사였다. 그러자 약점을 잡았다고 판단한 무리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유대 왕을 사칭한 자를 십자가에 처하시오.”
이때부터 광기와 집단 히스테리가 발동하면서 십자가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민란이 발생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총독은 마지못해 십자가처형을 지시하고, 하인이 떠온 물에 손을 씻으면서 말했다.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 나는 무관하니 너희가 당하라.”
기고만장해진 무리 중 누군가가 큰소리로 말했다.
“우리와 우리 자손이 책임질 것이요.”
이처럼 엄포를 놓으려다가 감정싸움으로 발전하게 된 결과에 대해서, 빌라도 총독은 자괴감에 치를 떨었다.
그래서 자기가 입고 있던 자주색 외투를 벗어서 예수의 어깨에 걸쳐주면서 말했다.
“너는 이 시간부터 내가 인정하는 유대 왕이다. 당당한 모습으로 저들에게 가거라.”
그런 다음, 왕의 행차에 시종이 따라야 한다면서, 두 명의 죄수를 함께 십자가에 매달게 했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아서, ‘나사렛 사람 유대인의 왕’ 이라고 쓴 팻말을 십자가 형틀 위에 매달게 했다.
유대인들을 싸잡아 세상의 조롱거리로 만들려고 작심을 했기 때문에 이처럼 결연한 태도를 보였다.
그 후, 7년이나 더 유대 총독으로 있으면서 예수사건 이후에 발생한 ‘부활론자들의 책동’과 ‘40인의 랍비 특공대’ 횡포에 단호히 대처했다.
그런데도 기독교 일각에서는 빌라도가 양심의 가책을 느낀 나머지 괴로워하다가 회개하고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혹은 죄의식을 감당할 수 없어서 자살했다는 둥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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