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예수가 나귀 타고 입성했다는 기록은 난센스

                                     출처 - 구글, 예수 나귀 타고 입성


(마태복음21장 1~17절)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군요? 하거늘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 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 도다 하시니라.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 주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유대인들의 최대 명절은 유월절이다. 유대력의 연초이고, 서력으로는 3월 14일이다. 유월절 행사는 일몰 후부터 시작한다.
순례자들은 유월절이 되기 3~4일 전 미리 와서 성전 뜰에, 팔뚝 굴기의 나무로 엉성하게 만든 울타리를 만들고 그 속에 1년 된 양이나 염소를 넣고 다른 것들과 섞이지 않도록 보호하면서 화덕에 쓸 장작을 준비한다. 그런 다음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했다.
성전 본당 건물 앞 쪽에는 거대한 물탱크와 도살장 그리고 번제단이 있다. 도살한 가축의 피와 내장은 수로를 따라 동쪽 키드론 골짜기로 흘려가게 되어 있다.
감람산에 서식하고 있는 까마귀들이 공중을 선회하다가 오물이 흘러나오면 곤두박질하면서 먹이쟁탈전을 벌리곤 했다.
본당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사제의 뜰과 백성의 뜰 경계에는, 무릎 높이(1엘레)의 난간이 있고, ‘지팡이나 전대와 먼지가 묻은 발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팻말이 붙어 있다.
백성과 이방인 뜰 경계에도 높이가 3엘레 담장이 있고, 거기에도 그리스어, 라틴어, 아랍어의 방언에 해당하는 아람 문자로, ‘이곳을 넘을 경우 사형을 면치 못한다.’는 경고판이 달려 있다.
백성의 뜰로 들어가는 출입구에는 성전 경비대 레위인들이 지키고 있다.
이방인 뜰에서는 환전상을 비롯하여 노점 상인들이 호객행위를 했다. 
노점상 좌판에는 까마귀들이 앉지 못하게 하려고 만든 뾰족뾰족한 성전지붕의 ‘까마귀 방벽’처럼 샹간 여인들 머리 장식용 모자가 있고, 금으로 외벽을 장식한 성전 본당 건물 모형의 ‘황금의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이스라엘아 들어라! 이렇게 시작되는 세마가 새겨진 판화, 그것을 작은 글씨로 새긴 목걸이, 기도할 때 머리와 팔에 두르는 탈리트와 두 개의 끈이 매달린 테필린 상자도 있었다.
봉헌물로 쓸 제물은 안토니요새 근처의 가축시장에서 샀다.
이방인이나 백성의 뜰에서는 누구든지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말을 잘못했다가 돌팔매질을 당하거나 체포되기가 십상이었다.
그런데도 요한복음 18장에 보면, 예수는 안나스 면전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회당과 성전에서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는 미리 와서 사람들에게 비유를 통해서 이미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므로 마태복음21장 있는 ‘성전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 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면서 내 집을 너희가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다.’면서 폭력을 행사한 내용과는 관련이 없다는 얘기가 된다. 
만약 그렇게 했더라면, 예수는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1권8장, 성경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모순 중에서)

예수는 12살이 되 던 해에 사두개파 사제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이때부터 헬레니즘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고, 자연과 생명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려고 노력했을 것이므로 그리스 철학자 아낙사고라스(500~BC428)에 대해서도 십중팔구 알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아낙사고라스는『자연에 대하여』서두에, ‘모든 것이 다 같이 있었다. 그리하여 거기에 정신이 생기면서 이것들에게 질서를 지어 주었다’고 적어 놓았다.
그의 기본철학은 정신에 의한 생성과 소멸이었다. 만물은 원래부터 존재하고 있었으며, 분리되는 과정이 소멸이고 합쳐지는 것이 생성이기 때문에, 사람의 출생과 사망도 생성과 소멸과정의 반복일 뿐이라고 말했다.
식물의 생장과 인간의 감각적 지각을 포함하는 모든 질료는, 매순간 그리고 언제나 정신에 의해 활성화된다면서 정신을 에너지(힘)로 보았다. 이와 같은 아낙사고라스의 정신개념을 아리스토텔레스(BC384~BC322)는 높이 평가했다.
아낙사고라스가 말하는 정신은 만물이 존재하는 곳에, 둘러싸고 있는 덩어리 속에 존재한다. 정신은 소용돌이를 일으켜 다양한 실체들의 분리와 결합을 가능하게 한다.
우주는 2단계를 거쳐 정신에 의해 형성되었다. 
첫 번째 단계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회전과 혼합의 과정이고, 두 번째 단계는 생명체의 발전이다.
첫 번째 단계에서는 모든 어둠이 모여 밤을 이루었고, 모든 액체가 모여 바다를 이루었으며, 다른 질료들도 마찬가지다. 두 번째 단계는 원래의 혼합물에 내재하는 동식물 종자에 의해서 일어난다.
아낙사고라스의 주장에 따르면, 생물체의 성장은 유기체 속에 있는 정신의 힘에 기인하는 것이고 이 에너지 덕분에 유기체는 주변의 물체들로부터 영양분을 흡수 성장한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식물의 생장과 인간의 감각적 지각을 포함하는 모든 질료는, 매순간 그리고 언제나 정신에 의해서 활성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낙사고라스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만한 기적을 보여주지 못했다. 현실감도 부족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하지만 예수는 아낙사고라스가 보여주지 못했던 기적을 보여주었다.
태생적 창조 정신에 대한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못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가 나를 믿으라고 말했던 것은 '메시아 예수'가 아니었다. 태생적 창조 정신과 자력갱생의 정신력으로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나(自我))를 믿으라고 했다.
바리새인들이 이와 같은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래서 랍비 니고데모와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따라다니면서 말꼬투리를 잡으려고 했다.
(1권9장, 헬레니즘 척결에 급급했던 가말리엘 중에서)


 출처 - 구굴, 예루살렘 성전 

예루살렘에는 또 다른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페루시아의 속주였던 유대는 알렉산더 대왕의 참모였던 셀레우코스1세가 시리아에 왕조를 세운 기원전311년부터 유대는 페루시아 속주에서 시리아 속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기원전 165년부터 23년 동안 시리아는 유대교 탄압을 가했다. 
번제제를 비롯하여 각종 행사와 경전을 읽지 못하게 하고, 할레도 시술하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되니까 그리스 계열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성전을 차지하고는 주피터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제단을 만들고,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 먹고 마시면서 ‘이것은 디오니소스의 살, 이것은 디오니소스의 피’하면서 신성을 나누어 가지는 의식을 했다.
시리아 왕조가 망하고,(BC142) 유대가 로마의 속주가 된 다음에도 디오니소스 잔재는 남아 있었다.
예루살렘의 실세였던 원로사제 안나스는 그들을 시급히 제거해야 할 불법의 무리로 간주하고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예수가 이와 같은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니까 온 성이 소동하였다는, 마태복음21장 기록은 한마디로 난센스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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